좋은스포츠_FAITHFUL SPORTS

스포츠는 우리에게
늘 ‘좋은’ 존재였는가?

좋은 스포츠란 무엇인가? 스포츠가 좋다는 것은 스포츠를 구성하고 있는 세 가지 핵심 요소들의 ‘좋음’을 의미한다. 이중 가장 중요한 것은 첫째, 스포츠의 핵심 자원인 ‘선수’이다.

첫째, 선수는 운동 기계가 아니다.

선수는 스포츠 서비스를 제공하는 핵심 서비스 공급자이자, 비정형적 스포츠서비스의 몇 안되는 물리적 실체의 핵심이기도 하다. 하지만 선수들을 운동기계로 간주하고, 선수 스스로도 좋은 성적을 선수가 지향해야할 궁극점으로 간주하는 순간, 오직 승부만이 성적만이 그들의 존재 이유가 된다.

이와 같은 단일 목표가 그들에게 존재의 목적이 되는 것은, 그들이 좋은 선수를 넘어 ‘좋은 사람’으로 발전하고 기억될 수 있는 기회를 때때로 박탈시킨다. 단일 목표가 필연적으로 야기한 성패에 대한 중압감과 고통은 그들의 누구인지,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길 원하는지. 선수 이후의 삶은 어떠할지를 고민하는 것을 사치로 만들기도 한다.

선수는 ‘좋은 선수’를 넘어 ‘좋은 사람’으로 발전되고 기억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좋은 선수에서 좋은 사람으로의 발전 과정에 요구되는 선수의 노력위에, 좋은 교육, 좋은 기회, 좋은 환경이 인터벤션 과정의 through-put으로 요구됨은 자명하다.

우리 ‘좋은스포츠’는 좋은 선수를 좋은 사람으로 발전키시기 위해 존재한다. 이것이 우리가 선수와의 계약 특약 1번에 다음의 항을 조심스럽게 하지만 용기있게 써넣는 이유이다. 

“선수의 계약 해지 요청이 있을 시 언제든 즉각 계약을 해지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우리는 이 과정에서 금전적 손해 배상을 요청하지 않으며, 법적 분쟁 해결 과정이나 소송을 진행하지 않는다. 이는 선수를 최우선으로 여기는 ㈜좋은스포츠의 운영 철학에 기반한다.”

둘째, 우리는 스포츠 자체가 발전하길 소망한다.

최근 프로스포츠에서는 오심에 대한 판정시비가 끊이지 않고 있다. 선수에 대한 보복은 물론, 심판에 대한 보복 행위도 등장하고 있다. 물론 그들만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스포츠의 정수라 할 수 있는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은 배제되었고, 스포츠에서만 볼 수 있는 상호 존중의 고귀한 과정 역시 생략되었다.

프로야구에서 최고 연봉을 받는 선수의 연봉은 무려 25억이다. 우리 사회의 압도적 다수인 우리들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금액이다. 선수의 그와 같은 억대 연봉은 결국 시장에서 생성된 가치이며, 시장의 구성 요소에 대한 규명은 결국 다시 ‘우리’로 회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즉, 스포츠의 인기가 커지면 커질수록, 스포츠의 지향점은 다시 ‘우리’가 되어야 한다.

승리에 대한 욕망이 전체가 되어 버린 스포츠. 승부 조작, 보복, 각종 보기 민망한 모습들로 얼룩지는 스포츠. 이는 과연 우리 사회의 위로 기제로서 묵묵히 자기 역할을 해왔던 스포츠의 정수에 부합되는가? 가슴 아픈 참사와 이런저런 속상한 일들로 마음이 무너진 사람들이 기대어 쉴만한 언덕이었을까? 과연 스포츠는 ‘좋은’ 스포츠였을까?

우리 좋은스포츠는 스포츠가 승부의 가치를 넘어, ‘좋은’ 스포츠로 우리 사회에서 작동하고 기억되길 소망한다. 우리는 이와 같은 가치의 실현을 위해 존재한다.

셋째, 우리 사회는 ‘좋은 선수’와 ‘좋은 스포츠’를 통해 ‘좋은 사회’로 발전해야 한다.

우리 사회는 스포츠를 통해 많은 위로와 격려를 받아왔다. 때로는 땀과 눈물로, 때로는 승리의 감동으로, 때로는 유쾌한 기억으로 스포츠는 이미 우리의 희로애락을 나누는 독특한 문화로 자리 잡았다.

우리나라는 참으로 가슴 시린 참사를 너무도 자주 겪고 있다. 1990년 세모 유람선사고, 1994년 성수대교 붕괴사고,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사고, 2009년 용산 화재사고, 2010년 천안함 침몰사고, 2017년 제천 화재사고 등, 우리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아픈 일들이 우리에게 너무도 자주, 그리고 계속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그때마다 스포츠는 우리 사회의 위로가 되어온 것이 아닌지 조심히 생각해본다.

시간이 갈수록 스포츠에 직접 참여하는 참여 스포츠 인구는 크게 늘고 있으며, 프로스포츠의 관중 수 역시 각종 참사 이후에 매번 큰 폭으로 증가하여 왔다. 또한, 지속적인 경제 침체나 경제성장률 하락 속에서도 스포츠의 직간접 소비는 지속적으로 늘어왔다. 즉, 우리 사회가 아프고 힘들 때마다, 우리에게 위로를 넌지시 건네줬던 매개체. 그것이 바로 스포츠가 아니었을까?

문화화가 된다는 것은 함께 울고 함께 웃는, 함께 향유할 수 있는 보편타당성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스포츠의 사회문화적 메커니즘이 강조될수록, 스포츠의 필연적이고 본연적인 정체성은 ‘위로’와 ‘기쁨’을 모두 포함한 ‘함께’로 수렴되어야 한다. 따라서 스포츠를 사회에게 제공하는 선수들의 활동과 스포츠 자체는 승리의 무한 추구가 아닌, 우리 모두가 ‘함께’ 즐기고 공감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이어야 한다.

우리 사회의 아픔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스포츠에서 우리 사회의 새로운 희망과 미래를 보길 소망한다. 선수가 보여주는 스포츠의 최선을 통해, 사회가 보듬어지고 위로받는 광경을 목도하길 희망한다. 스포츠를 통해 세상이 더 ‘좋은’ 세상이 되길 기도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가치의 실현을 위해 우리 ‘좋은스포츠’가 존재한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좋은 스포츠, 더 나아가 FAITHFUL SPORTS(신실한 스포츠)라고 부르는 이유이다.

좋은스포츠 대표

박성희